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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택시 기사의 점심값 2005-07-12 10:59:51 
작성자 : 김동철   조회 7,763


(게시판을 정리하면서 예전 글 중에서 이 글 하나만 남겼다. 1992년에 처음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거의 십년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잠을 설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시절에는 왜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을까.
바쁘게 살았을수록 당시 사정을 글로 남겼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지금이랑 그 때랑 내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고도 싶다.

솔직한 나를 제대로 느껴 보기 위해서 더러는 글을 써보고 싶다.
아마 그해 3월달쯤이었을 거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때는 스메트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잘 팔리던 때였다.
신문 광고를 내면 보통 보름 정도의 스케줄이 잡히곤 했다.
돈을 싸들고 빨리 와 달라는 업체가 무지 많았다.
그해엔 부산행 비행기를 아마 백번쯤은 타지 않았을까 싶다.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동두천의 어떤 업체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우리 프로그램을 보고 좋으면 당장 사겠단다.
당시에는 한달에 택시비를 평균 150만원 이상씩 쓰던 때였다.
그때는 사무실이 왕십리에 있었는데 동두천 가자니 3만원이란다.동두천에서 도착해서 점심을 잘 대접받고 대충 30분 떠들고 나서 200만원을 손에 쥐었다.

프로그램을 설명하려면 보통 한 시간쯤 걸리지만 빨리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면 30분 만에 끝날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했거나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서 잘 아는 경우다.
비슷한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선전해주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기분이 좋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택시를 타려고 근처에 있는 택시 정류장으로 갔다.
택시를 오래 타게 되면 한가지 요령이 생기는데 특히 장거리를 갈 때는 아주 중요한 노하우가 된다.

우선 새 차를 골라야 한다.
장거리를 가려면 승차감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담에는 운전사의 인상을 잘 살펴봐야 한다.
성격이 나쁜 운전사와 먼길을 가려면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서울행 택시를 탔다.
의정부 근처에 오니 차가 많이 막힌다.
차를 타면서 차가 막힐 때 요령 덕을 톡톡히 본다.
군밤이나 호떡 등, 어렸을 때 좋아하던 것을 사서 선물하면 어떤 기사라도 순한 양이 되는 법이거늘 나처럼 택시 귀신이 길이 막힌다고 짜증을 받을 순 없다.
피곤하다고 엄살을 떨고는 내가 잠잘 수 있도록 재미있는 얘기를 해보라고 말했더니 자기는 고생만 해서 재미있는 얘기가 한 개도 없단다.

그렇다면 고생한 얘기라도 해보라니까 오히려 나보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보란다.
인상을 무지 착한 웃음인데 재미는 영 젬병을 만난 것 같다.
조금 더 가다가 슬며시 잠을 청했다.
약간의 비포장 길은 달리는 차는 어떤 자장자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바가 있다.
얼마간 자고 다시 일어나봐도 여전히 의정부 근처다.

심심해서 할수 없이 내가 말을 붙여봤다.

"아저씨는 점심을 어디서 드세요?"
"저요? 저는 무조건 집에서 먹어요."

"장거리 갈 때는요?"
"에이, 그런 날도 참도 있다가 집으로 와서 먹어요."

"아, 아주머니 음식솜씨가 대단하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돈이 아까워서요."

"그럼 점심을 사먹은 적이 없다구요?"
"예, 믿거나 말거나 한 번도요."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지만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어려서 양쪽 부모님을 잃고 다섯명의 동생들을 키우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구요."

"동생들은 다들 착해요? 말은 잘 들어요?"
"예, 그럼요. 전 그 맛으로 살지요."

조금 망서리다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럼 점심값이 얼마인지도 모르세요?"
"동료들한테 들어서 대충은 알지만 사서 먹은 적이 없으니 정확하게는 몰라요."

서울로 오는내내 그 아저씨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 형님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아버지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지 어쩌면 저럴 수가 있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차가 사무실의 건너편쪽에 도착했다.
담배를 하나 꺼내서 귄하면서 조금만 쉬고 가시라니까 흔쾌히 그런단다.
약간 한적한 골목에 차를 세우고 하던 얘기를 다시 꺼냈다.

"아주머니는 착하세요?"
"그럼요, 고생만 시켜서 늘 미안하게 생각해요."

"저어, 제가 아저씨 점심을 사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네요?"
"에이, 그러실꺼 없어요. 오늘 재미있게 와서 기분이 좋은데요?"

아까 30분 떠들고 받은 200만원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택시비는 3만원이지만 6만원 꺼내고 나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저씨,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예? 무슨 무슨 부탁인데요. 말씀해보시죠 뭐..."

"사실은 제가 충청도 촌놈이거든요. 근데 아저씨 얘기를 듣고 나서 한참 생각했어요."
"....."

"점심을 사드신 적이 없다는 말이 영 맘에 걸려서요."
"그거야 제 사정인데요 뭐..."

"그래서 제가 아저씨 점심을 한 번 사드릴려구요."
"에이, 괜찮아요. 그러실 거 없어요. 타주신 것만해도 감사하죠 뭐..."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요. 아저씨." "아니에요. 전 진짜 괜찮아요."
"아마 이 돈이면 점심은 좋은 걸 사드실 수 있을 거에요. 기왕이면 멋진 걸로 드세요."

"아니에요. 저 이 돈 받을 수 없어요."

이러다간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돈을 냅다 내던지고 건널목 쪽으로 내달렸다.
사무실에 오자마자 창문으로 몰래 살펴보니 아저씨가 한참동안 서 있다.
(아저씨 기분이 나쁠까. 내가 괜히 그랬나봐. 내가 지나쳤나보다)

조금 후에 차가 떠났을 때 문득 시골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경로당에서 밤을 새면서 100원짜리 민화투를 치시다가 2000원쯤 잃으면 안절부절 못하신다는 큰 형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 그 해 추석 때 어머님을 뵈러 갔을 때 마누래 몰래 어머님을 밖으로 불러 내서 어머님 손에 50만원을 쥐어 드리던 생각이 스쳐갔다.

"어머니, 요새도 화투 좋아하세요?"
"요새는 화투 별로 안 친다"

"어? 큰형이 그러는데 아니라던데요?"
"으응? 큰형이 그러더냐?"

"돈을 잃으면 아무래도 기분은 상하지요?"
"너희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번돈인데..."

"에이, 자식을 많이 두신 건 그런 때 좋은 거 아니에요?"
"그래두 그렇지..."

"어머니..."
"오냐..."

"이 돈은요, 꼭 감춰 두었다가 돈을 많이 잃었을 때만 꺼내 쓰세요. 꼭요. 아셨죠?"
"그래, 잘 알았다. 고맙다."

눈물을 글썽이시던 어머님은 돌아 가실 때까지 자식들이 드린 용돈은 거의 남기고 가셨다.
어쩌면 조금 전의 그 택시 기사 아저씨도 점심을 사 드시진 않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님은 재작년에 다시 올 수 없는 먼곳으로 떠나셨다.

나는 작년에 친구 녀석의 놀림때문에 운전을 배웠기에 택시를 탈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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